노무현 대통령 배너

2009/06/11 16:19
가장 큰 느낌은..
610에 대해서 인식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는 않은 듯 했다.
나 역시 머릿수 하나 늘린다는 인식으로 간 정도였고,,

시민과 직접 마주친 전경들은 폭력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경은 조용히 있었다.
정작 문제는 그들은 거기 없었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카메라를 가져갔지만 간간히 떨어지는 빗방울에 별로 촬영하진 못했다.
좋은 성능의 회사에서 지급된(비맞고 망가져도 되는) 카메라를 든 PRESS들이 부러웠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는 것도 부러웠다.

전경 차의 스피커는 굉장히 후져서 뭐라고 하는 지 잘 들리지 않았다.
간간히 '불법', '해산' 등의 단어가 들릴 뿐.. (중요한 건 다 들은 건가..-_-;)

처음 전경은 영국문화원과 광화문으로 가는 길을 막는 정도였는데 나중엔 대한문쪽까지 내려왔다.
그러면서 자연히 시청역 3번 출구가 봉쇄됐는데 시민과 전경이 충돌했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그 외의 전경들은 일단은 자리를 지켰고 앞줄에 선 지휘관(잘생겼더라)은 자리를 지키도록 막아섰다.
하지만 그들은 복무 수칙을 지키고 위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니 전경들을 칭찬할 생각은 없다.

전경의 방패에 오줌을 싸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경들도 잠시 당황했으나 계속 자리를 지켰다.
오줌을 눈 사람의 얼굴은 자신이 승리했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아마 기자 혹은 전경의 카메라에 손으로 잡고 있던 것이 찍혔지 않을까?-_-;;

시민 중엔 전경에게 물병이나 돌을 투척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다수는 아니었다.
그들을 제지하려는 시민들도 있었고 그 와중에 시민끼리 충돌하기도 했다.
대체로 전경과 마주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욕을 하거나 꾸짖는 수준이었다.

카메라로 시민을 촬영하는 전경이 있었는데 그들이 진정 무서운 자들이다.
왜냐면 모노포드(외발이)라는 엄청난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진압봉이 사람을 떡실신시킨다면 모노포드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전경들이 방패를 찍으며 구호를 위치며 앞으로 나올 때는 솔직히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전경들 역시 그것을 잘 알았다.

해산 과정에선 충돌이 있었다.
누군가 잡혀서 끌려가면 시민들은 전경을 둘러싸고 그를 구해내려 했다.
전경 역시 시민에게 끌려가는 전경들을 구해오는 수준에서 폭력을 행사했다.
그 이상의 폭력도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목격하진 못했다.
하지만 연행돼 가는 시민도 없진 않았다.

10:30쯤에 전경들이 시민을 인도로 몰아내는 게 거의 완료되고 차도가 개방됐다.
빈 차도 위를 기다렸다는 듯이 고속으로 들어오는 차들은 야속했다.
버스야 어쩔 수 없지만.. 승용차 운전자들은 좀 아쉬웠지만 그들을 탓할 순 없다.

11가 되기전에 많은 수의 시민들은 자리를 떴다.
차라리 명동, 종로쪽으로 옮겨가면서 세를 불렸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렇게 일사 분란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들을 통제하고 이끌 역량을 가진 사람이 없어 보였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럴 의지가 없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광장과 도로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도로는 경찰과 대치하며 욕설과 폭력 공포감이 있는 상태였는데 반해 광장쪽은 어찌보면 축제처럼 보였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둘은 완전히 분리된 공간이었다.

정치인들은 마치 축제의 응원단장 같은 느낌이었으며 언제나 그랬듯이 공허했다.
몇몇 사람들의 선언문 낭독은 너무 조용해서 들리지도 않았고 사람은 경청보단 잡담을 선호했다.
차라리 강기갑이나 노회찬의 선동조의 연설에 사람들은 더 동조했고 더 효과적이었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사람은 권혜효였다.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알고 있었고 선동도 낭독도 아닌 감동을 주려는 그의 연설이 훨씬 더 와닿았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였지만 전혀 반갑지 않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시간에 축구(사우디전)를 보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라는 그의 얘기들에 시민들은 더 뜨겁게 반응했다.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610, 메이데이와 같은 날들은 시민에게 직접 다가가진 못하는 듯 하다.
광우병과 같이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이 있을 때 그들은 힘을 보탠다.
용산 참사나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와 같은 '죽음'의 형태까지 이르러야 반응을 보인다.
전태일도 그래서 몸에 불을 질렀겠지.

모인 사람들은 대체로 어린 학생과 대학생이 많았다.
40대 중후반의 사람들(87년에 20대 초반이었던 사람들)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렇다 해서 그들의 87년의 노고에 감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11:50쯤에 자리를 떴고 그때는 전경들도 집합해서 대기하고만 있었다.


PS.
다음에 갈 땐 플래쉬를 챙겨 가야겠다.
어차피 전경과 몸싸움 할 자신은 없으니 뒤에서 전경들 시야나 흐려야겠다.

트위터를 통해서 시청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 사서 무선랜으로 하긴 돈이 많이 들고 휴대폰과 트위터를 연동하는 방법이 있다던데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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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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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rss 에 등록됐네요. ㅊㅋㅊㅋ... 시간이 필요했던건가?

    2009/06/12 09:26 [ ADDR : EDIT/ DEL : REPLY ]
    • 만 하루가 걸렸네요. 어제 보낸 메일 보고 티스토리 측에서 수동으로 처리한 건 아니겠죠?^^;;
      지금은 사파리 ver.4 에서 쓰는 중인데 엄청 빠르군요. 크롬과 비슷한 정도인데, 사실 둘다 엄청 빨라서 체감속도로는 비교가 어렵네요.

      2009/06/12 10:11 [ ADDR : EDIT/ DEL ]